안녕셨는지요? 저번 학기에 교수님 수업을 들었던 학생입니다. 내내 공사 중이었던 게시판이 드디어 완성되었네요. 이곳은 여느 게시판보다 알차게 채워질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방학 동안 교수님 말씀대로 짧은 기간이지만 여행도 다녀오고 이것저것 알지 못했던 다른 분야의 -가령 기하학이나 역사쪽의-책들도 들추어 본 것이 제겐 많은 도움이 된것 같습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나도많지만.. 꼭 건축관련이 아니더라도 교수님이 추천해주고 싶은 도서가 있다면 추천해주시겠어요? 저같이 갈길 헤매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그럼 종종 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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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양(?)이 맞지요? 학교를 얘기 안해줘서..(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김수경은 다 여학생이었으니까..
뜻있는 방학이었군요...한가지라도 보람이 있었다면 성공이라 할 수 있을텐데 많은 경험을 했군요. 좋은 시작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한 번 했다고 모든 것이 갑자기 달라지진 않는다는 것도 알겠지요? 여행이란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혹은 같은 대상물을 보더라도 계절에 따라 다르고 자기의 관심사에 따라 달리 보이고 느껴진답니다. 틈나는대로 또 즐겨보세요.
추천도서...
사실 무엇을 읽을 것인가...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더우기 건축을 하는 입장이라면 이보다 더한 우문도 없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책이 교과서이니까요. 건축 뿐만 아니라 타분야 예술, 사회, 경제, 철학, 문학, 심지어는 만화책까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평생을 다바쳐도 어림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깊게 들어가기 보다는 폭을 넓히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덤비면 오히려 부담이 되기 일쑤고 중도에 던져버리게 되지요. 편한 마음으로 늘 책과 가까이하는게 좋겠지요. 다시말해서 독서실에서 읽는 책 보다는 지하철 안이나 여행 중이라면 기차 안...정독으로 외우는 책 보다는 생각을 동반할 수 있는 독서가 바람직하겠군요. 건축은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른 사람과 차별화 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책은 위에 열거한 것과 또 다른 분류방법이 많습니다. 건축서적 얘기를 우선 하자면 건축사 즉 역사서적이 있지요. 흔히 미래를 내다 보는 눈은 과거의 통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과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도 가능해지겠지요. 또한 잘 알고있겠지만 건축이란 완전히 독립된 분야가 아니어서 당시의 예술이나 사회를 같이 이해해야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른 예술서적이나 일반 역사서적도 들추게 되고, 사회학까지도 넘보게 되지요.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책들을 딱딱하게 읽을 것이 아니라 편하게 읽으세요. 고등학교 역사시험 공부하듯이 '몇년도에 누가 어디에 무슨 집을 지었다'를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이런집이 나오게 됐으며, 이것이 왜 가치있는 건축인가'를 '이해'하려고 애써보세요.
과거의 얘기를 했으니까 현재도 얘기해보지요. 현대 건축론, 작가론, 작품집, 그에 따른 평론 등이 있지요. 현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건축, 건축가를 접해보는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이해한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도 과거의 예와 마찬가지로 타 분야의 서적으로 확대되겠지요. 건축이란 인간 사회, 문화의 한 상황이니까요.
또 다른 분류는 소위 얘기하는 그림책과 이론 서적이 있습니다. 다른 건축가의 자품 사진 및 도면으로 이루어진 책이 전자의 경우라면, 그 건축가의 사상, 이론과 또 그에 대한 비평가들의 비평을 담은 서적, 또 그야말로 건축일반론 혹은 특정 분야에 대한 이론서적 등이 후자에 해당됩니다. 둘 다 좋은 책이라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학생들을 보면 이에 대한 자세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너무도 쉽게 혹은 만만하게 대하고, 후자의 경우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골치 아픈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림책은 그저 과제나 작업할 때 소위 일컬어지는 '베끼기 위한' 그림대백과사전, 이론 서적은 시험에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그 전날 밤새워 형광펜 그어 가면서 핵심을 외우는 수험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이 두가지의 책에 대한 자세가 반대로 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른 건축가들이 해놓은 결과사진만을 보고 '예쁘다' '멋있다' '이상하다' 라고 쉽게 평가하지 마세요. 그 그림 뒤에 숨겨진 수많은 고민과 그 이유를 읽어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서양의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옮겨오면 아직도 그것이 훌륭한 건축물이 될까요? 건축이란 절대 홀로 서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상황과 문화를 바탕으로 지지되어 있는 것이랍니다. 이론 서적들은 앞서도 얘기했지만 외우기 보다는 이해하는 방향으로 편하고 폭넓게 대해야합니다. 'read between the lines'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공통적으로 주의해야하는 점이 있습니다. 절대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매체에 약합니다. 인쇄된 글이나 방송되는 말은 전부 진실이라고 절대가치를 쉽게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쇄된 글을 전부 절대가치로 생각한다면 그릇된 생각에 현혹되어 자신을 망각한 채로 평생을 지내거나, 궁극적으로 그 글을 쓴 사람을 극복할 수 없고 그에게 종속돼버린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장래엔 그 사람보다 더 뛰어나야되지 않겠습니까? 옳지않은 글도 반드시 있다는 걸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책이 나쁜 책이라는 건 아닙니다. 객관성 내지는 자기 가치관의 문제지요. 물론 나름대로 완성도가 있는 분들이 글을 쓰는 것이고 정연한 논리를 바탕으로 얘기하기 때문에 신뢰감을 더욱 쉽게 느끼지요. 하지만 절대적 판단 기준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가급적이면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세요. 너무 겁나는 얘길 했나요? 하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위험성입니다.
분류가 너무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쉬운 방법 하나를 소개하지요.
요즈음 '잡지책'이 좋아졌습니다. 위에 열거한 거의 모든 분야가 섭렵되어있지요. 사진도 있고, 도면도 있고, 역사 및 이론도 같이 있습니다. 가히 백화점이랄 수 있지요. 잡지책이라고 가볍게 쓱쓱 보아 넘기는 자세가 고쳐지면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없습니다. 비용도 많이 안들지요? 도서관에 가도 꽤 있을거고, 서점에서 몇 가지 산다고해도 별 부담되지 않을겁니다. 어느 잡지가 좋은가는 기준이 다르니까 얘기하기 곤란하구요, 골고루 보세요. 진지하게 보세요. 꼼꼼히 살펴보세요. 새로운 스승님을 만날겁니다.
장황해졌는데...위에 얘기한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귀결됩니다.
자신을 살찌우는 일이지요. 자기의 가치관을 높이고 심미안을 가질 수 있게되고 과연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많은 질문과 대답을 일궈내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읽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왜 읽느냐를 항상 염두에 두면 될 것 같군요.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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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고맙습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새롭고 '이게 제대로야..'라는 느낌이 듭니다.
열심히 하고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구요.
학생들이 교수님 수업을 듣고 건축이 하고 싶어졌다고 말하곤 하지요.
멋있는 일입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보니 고등교때 까지의 제 모습이 생각 나네요..
정말 그때 까지의 저는 전 과목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어느것 하나에도..하지만 대학교 와서 정말 어느 한과목 빠진는것
없이 모조리 흥미로운 과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그땐 교수님 말씀대로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이해가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요..
전 아마 오쇼 라즈니쉬의 '내가 사랑한 책들'같은 글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겠습니다. 객관적이고 좀 더 큰눈을 가져야 한다는걸..
정신적인 사춘기에 좋은 조언자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구요~
그럼 또 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