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맵 |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6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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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울진읍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정(望洋亭)은 원래 평해군 기성면 망양리 앞 모래밭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조선 세종 때 평해군수 채신보가 정자가 오래되어 허물어진 것을 마을의 남쪽 현종산 기슭에 옮겨 세웠다. 조선의 정국공신이었던 채수는 “우리나라를 봉래 방장과 같은 산수 좋은 신선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 관동이 제일이며 이곳의 누대를 백으로 헤아리지만 망양정이 으뜸”이라고 극찬하였는데, 이것은 망양정이 이름 그대로 바다를 전망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는 정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숙종은 강원도관찰사에게 관동팔경을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해서 두루 감상한 뒤에 망양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면서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고 쓴 친필 편액을 내렸다고 한다. 이는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넓게 트인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그만큼 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 1689년 숙종은 이곳을 친히 돌아보고 “뭇 봉우리 거듭거듭 서리서리 열리니 성낸 파도, 거친 물결 하늘에 불어온다. 이 바다 변해서 술이 된다면 어찌 단지 삼백 잔만 기울이겠는가”라고 그의 호방한 뜻을 피력하였으며, 제22대 임금 정조도 시를 읊어 그 경치를 찬양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와서 시를 지었고, 조선 초기의 학자 서거정은 ‘평해팔영’의 하나로 망양정을 꼽았으며, 선조 때의 송강 정철은 망양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하늘 끝을 끝내 보지 못해 망양정에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득 노한 고래 누가 놀래기에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이 구는지고
온 산을 깎아내어 천지 사방에 내리는 듯
오월 장천에 백설은 무슨 일인고
한편 정철과 파벌을 달리했던 아계 이산해는 울진으로 유배되자 자주 이 정자에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한다. 중종 때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명하여 중수하였지만 오래되어 쇠락하고 말았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관동팔경이 울진에는 한 곳도 없는데 평해에는 월송정과 망양정 두 곳이나 있어 그 하나를 나누어달라고 해서 1859년 철종 때 울진현령 이희호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송강 정철이 노래했던 망양정의 정취나 겸재 정선이 그린 풍광은 옛터에 가서 회상해야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현재의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의 만경창파 또한 그에 못지않을 만큼 빼어나다. 그러나 허물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것을 1959년에 다시 세웠고 1979년에 다시 보수하여서 누각 자체가 주는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당시 숙종의 어필 현판은 울진읍 읍내리 객사에 보관하였다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양정에 올라서 바다를 바라보니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2012.10.5, 다음생각)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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