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어울리는 건축물을 짓고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을 즐기는 모습은 옛 선비들의 이상적인 지향점이었다. 단순히 경관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모습은 수많은 금은보화나 산천을 울리는 권세보다 더욱 중요한 삶의 목표인 것이다.

인공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단순하고도 간결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담백한 백자를 닮아가는 선비의 모습은 학문과 사상을 포괄하는 멋을 보여준다. 옛 건축의 아름다움 또한 거대한 크기나 강렬한 빛깔의 놀라움보다 보일 듯 말듯 드러나지 않는 우아한 수줍음으로 오랜 세월 더욱 깊어지는 장맛처럼 익어간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는 이러한 옛 사상을 가장 멋지게 보여주는 정자이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을 지켜 온 정자는 오십천의 호젓함을 바라보는 최고의 장소에 위치한다. 두타산의 푸름을 절벽 끝으로 받으며 산과 물의 기운을 잇는다. 정자의 건축학적 가치는 누각을 받치는 17개 기둥에 있다. 절벽 위 일정하지 않은 바닥을 따라 일부는 주춧돌 위에 나머지는 그대로 바위 위에 맞닿는 기둥들은 17개 모두 그 길이가 다르다.

얼핏 보기에는 기술이 부족하여 이런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목조 건축을 이해하는 전문가의 눈에는 깊숙이 구멍을 내고 기둥을 박아 세우는 기술은 일반 건축술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 한다. 바위 위에 그대로 올려 진 기둥 위에 작지 않은 2층 누각이 서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랭이질’이라 불리는 이러한 전통의 건축양식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자연 그대로를 이용하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이다. 조선시대 삼척부 객사의 부속 건물로 공식 연회의 장소가 되었다는 정자는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숙종의 어제시와 율곡 이이의 싯구가 새겨져 있어 가치를 더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서루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1.15, 마로니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