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맵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산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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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리에 방초정이 있다면 상좌원리에는 모성정이 있다. 모성정은 1929년 이현기가 이곳 상좌원 출신 그의 선조 초당(草堂) 이장원(李長源,1560~1649)을 기리기 위해 바위 위에 세운 정자다. 주변에는 비석군과 함께 바위에 음각된 글씨가 여기저기 숱하다. 세운 시기가 근세라 문화재로 지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연경관은 방초정보다 수려하다. 모성정에서 내려다본 4가지 풍경이 전해진다. ‘물결처럼 보이는 자욱한 안개’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 ‘낮게 드리운 저녁놀’ ‘나뭇가지 흔드는 솔바람’이 그것인데 그 자체로 시 한 수씩이다. 지금은 풍광이 다소 변했겠지만 뒷산과 앞을 흐르는 내, 한가로운 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로 초당 이장원은 이곳에서 글을 읽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학자이자 효자로 소문난 이장원은 7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옆의 여막에서 기거하며, 3년간 흰죽만 먹으며 시묘를 할 만큼 효성이 지극했고, 또 예절이 어른보다 나았다고 전한다. 가난하였지만 아버지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끊이지 않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아버지를 업고 삼성암으로 피난을 갔었는데, 호랑이 두 마리가 따르며 이들 부자를 호위했다는 전설도 있다.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할 때는 이장원의 효행에 감동받아 묘역의 소나무가 3년간 잎이 나지 않다가 탈상을 하고서야 잎이 났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효성이 금수와 초목에까지 미쳤다고 탄복하였다.
정자안의 현판엔 그가 남긴 충효의 시가 있다. 바위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모성암’이란 글씨는 그의 장손인 이진영이 1697년 ‘屈岩’을 ‘慕聖岩’으로 고쳐 부르고 친필로 새긴 것이다. 모성정은 수차례에 걸친 중건과 이건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하천변에 위치한 자연 조망형 정자의 대표적 유적으로 뽑히며 둘레의 경치와 잘 어우러져 있다. 건물은 지붕과 기둥 사이에 화려한 단창과 용을 형상화한 조각물을 배치하였으며, 처마 끝 사면에 보조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가미한 팔각지붕 양식이다. 3~4십년 전에는 이곳에서 활을 쏘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전에는 ‘활터’라고도 불렀다.
주마간산으로 보면 도처의 정자가 다 그게 그것 같고, 약간의 운치만을 향유하고 있을 뿐이다. 조상들의 정자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숨결을 느끼려면 정자의 편액에 새겨진 시 한 수 , 바윗돌의 글씨 하나까지 관심을 가져야겠으나, 그건 어려울 것이고 적어도 그 속뜻을 새겨듣는 노력만은 게을리 말아야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상들의 깊고 그윽한 감성과 지혜에 어찌 미치고 이를 수 있으랴.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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