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맵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6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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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명종 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66년(명종 21)에 ‘남계(藍溪)’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1634년(인조 12)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강익(姜翼)을 제향하고 1642년(인조 20) 유호인(兪好仁)과 정온(鄭蘊)을 병향하였다. 그 뒤 1677년(숙종 3)에 정온을, 1689년(숙종 15)에 강익을 본사(本祠) 올려 배향하고, 1820년(순조 20) 정홍서(鄭弘緖)를 별사에 모셨다. 이 후 1868년에 별사는 훼철(毁撤:헐어 내어 걷어 버림)되었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전사청(典祀廳)·명성당(明誠堂)·양정재(養正齋)·보인재(輔仁齋)·애련헌(愛蓮軒)·영매헌(詠梅軒)·풍영루(風咏樓)·묘정비각(廟庭碑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성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라 하며,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장소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동재(東齋)인 양정재와 서재(西齋)인 보인재에는 각각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이 서원은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2월 중정(中丁)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소장 전적은 『어정오경백편(御定五經百編)』·『고려사』 등 59종 317책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1만 4,500여 평, 대지 6,000평, 임야 1.5정보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양남계서원 [咸陽濫溪書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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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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