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급작스럽게 번개가 돼버렸군요.
2주전에 전라남도를 다녀와서 그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며 숨고르기를 하던차에,
얼핏 날씨 정보를 보니 딱 주말 토요일에 장마비가 소강상태여서,
때는 이때다 싶은거죠.
이번에는 경상북도로 가보기로 합니다.
아래와 같이 세군데를 추진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서석지는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수작입니다.
최근에 리스트에 추가된 불영사도 큰 연못이 특징이어서 좋은 비교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일시는 금요일 저녁, 2013년 7월 12일 (내일이군요....^^;;) 퇴근 후에 청운동 성천댁으로 가서,
토요일 아침부터 세군데를 돌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장두석군에게 숙소 섭외를 부탁해놓았구요,
저도 검색해보니 성천댁 자체에서 묵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EAST4 의 박준호 선생께서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빠른 답글은 건강한 답사의 기본이 됩니다!!!!
- 청운동 성천댁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중요민속자료 제172호. 이 집은 현 소유자의 2대조로 조선시대 고종 때 행장능참봉(行莊陵參奉)을 지낸 임춘섭(林春燮)이 매수하였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마을이 서쪽으로 올라간 경사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 100여 호나 되는 대부분의 주택들은 대체로 동쪽의 낮은 지역에 흐르는 용전천(龍纏川)을 내려다보며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마을 서쪽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대지 남쪽의 길을 향하여 남향 대문을 세웠다.
마당을 끼고 ㅁ자집이 배치되었는데 사랑방과 통래칸(通來間)이 남향하여 정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ㅁ자형 평면에 사랑뒷방이 서쪽으로 한 칸 돌출하여 □형으로 되었다. 안채에서 독립하여 있는 행랑채는 3칸의 오른쪽 끝이 대문간이고 어간(御間 : 중앙간)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좌측은 온돌방이다.
대문간에서 바라본 긴 남쪽 정면에 설치된 통래칸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고 좌측에 동향하여 전면이 개방된 안마루가 놓여 있다. 마루 좌측에는 사랑방이, 우측에는 뒷방과 큰 방이 대칭으로 배치되었고 앞채에 부엌·고방·외양간이 꾸며져 있다.
손바닥만한 안마당 위에는 지붕처마가 사방에서 돌출하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만약 좁은 안마당을 지붕으로 다 덮어버렸다고 가정하면 현재의 평면구성은 강원도 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9칸 똬리집과 거의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객(來客)의 사랑방 출입은 앞마당에서 직접 사랑방으로 드나들게 하였고, 강원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통래칸에서 사랑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은 원래 사랑방의 통래칸 쪽 반 칸이 쌀뒤주였다고 한다.
마루 상부의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 : 보를 세 줄로 놓아 한 간 통으로 집을 짓는 방식)이지만 좀 특별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사랑방 벽과 큰방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마루를 가로질러 큰 부재를 보냈다.
그리고 그 위에 보를 걸쳐서 마당 쪽으로 외팔보처럼 돌출시키고 그 끝에 처마도리를 놓아 지붕을 구성하였다.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에는 기둥 좌우에 외여닫이 널문을 한 1.2.짝씩 달았다. 안채는 기와집이나 행랑채는 초가집으로 두 건물 모두 몹시 퇴락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집의 평면구성은 ㅁ자형의 최소 규모로서 청송지방에서 볼 수 있는 ㅁ형의 배치방식을 수용하고 있으며, 강원도 남부지역의 9칸 똬리집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민가평면 연구의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영양 서석지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1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이 정자는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광해군 5)에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방지(方池)의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雲棲軒(운서헌)’이라 편액하였다.
서단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어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북단의 서재 앞에는 못 안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四友壇)을 축성하여 송ㆍ죽ㆍ매ㆍ국을 심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가운데에 돌출한 사우단을 감싸는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연못의 석벽은 그 구축법이 매우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동북 귀퉁이에는 산쪽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었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마련하였다.
이 연못의 이름은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서석군은 연못바닥을 형성하는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으로 그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 있다.
돌들의 이름은 선유석(仙遊石)ㆍ통진교(通眞橋)ㆍ희접암(戱蝶巖)ㆍ어상석(魚狀石)ㆍ옥성대(玉成臺)ㆍ조천촉(調天燭)ㆍ낙성석(落星石) 등이며 20여개에 이른다. 이러한 명칭은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울진 불영사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천축산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왕 5)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므로 천축산이라 하고, 전면의 큰 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서편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치므로 불영사(佛影寺)라 불렀다고 한다. 1397년(태조 6)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소운(小雲)이 중건하였는데, 그 후 다시 소실되어 1500년(연산군 6) 양성법사(養性法師)가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應眞殿)만은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그 후 1609년(광해군 1) 진성법사(眞性法師)가 재건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손으로 중수가 거듭되었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보전 ·근락전 ·응진전 ·명부전 ·조사전 ·칠성각 ·관음전 ·영산전(靈山殿) ·황화당(黃華堂) ·설선당(說禪堂) ·범종루 ·응향각(凝香閣) ·칠령각(七靈閣) 등이 있고, 창건 당시의 유적인 무영탑(無影塔)과 돌거북 2기가 있다.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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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교수님 이번에 당장 댓글달러 왔습니다.
못간다는 댓글입니다....--a 이번주에 건대 모임 잡혀있습니다.
언제쯤 참석할 수 있을까요 ㅠㅠㅠ
저는 다음주 현상 마감있어서 이번주말은 출근할듯합니다~ 조심히다녀오세요~! :-)
다음을 기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