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맵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
---|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1545년(명종 22)에 최응룡(崔應龍), 김취문(金就文)이 주창하여, 고려말 길재(吉再)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善山府使) 김용(金涌:1557∼1620)과 지방 사림들이, 서원 자리가 너무 외딴 곳에 있어 관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남산(藍山) 기슭에 복원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는 다시 사액되어 중수하였다. 길재의 출생지인 봉계리를 향하여 남향으로 서 있는데 앞쪽으로 감천(甘川)과 낙동강이 만나는 물길이 내다보인다.
서원에는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 정붕(鄭鵬), 박영(朴英),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가로 배향하여 5현의 위패를 모셔왔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경내에는 다섯 선현의 위패를 모신 상현묘(尙賢廟)와 누문인 읍청루(邑淸樓)·동재(東齋)·서재(西齋)·정학당(正學堂)·내삼문(內三門이 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길재는 고려말 성균박사(成均博士)를 지냈다. 1389년(창왕 1)에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고 노모의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였다. 1390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에서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낙향하여 금오산 기슭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현재 그 자리에는 채미정(採薇亭:경북기념물 55)이 있다. 옛날 중국 주나라 백이와 숙제가 충절을 지키며 수양산에 숨어 살았다는 고사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