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inction Of Korean Architecture
한국 건축은 멸종한다
건축문화 2010년 5월호 게재
얼마 전 무심코 넘기던 인터넷 뉴스에 의하면, 몇 십만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남성이 멸종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멸종하느냐 아니냐의 결과론보다 그 원리를 들여다보면, 현재에서 대처 가능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철학자는 부분을 들여다보면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화론의 보편적 근간은 아주 단순하다. '쓰지 않는 것은 퇴보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는 멸종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인간 꼬리의 퇴화와 공룡의 멸종이다.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인간의 꼬리는 지금 흔적만 남아 있다. 아마 조만간에는 이 흔적마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한때 지구상의 최강자로 존재하던 공룡들을 생각해보라. 지구의 기후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르는 먹이 사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지금까지 남아서 지구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환경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잘 대응한 존재였다는 반증이 아니겠나 싶다.
언뜻 관심 가지 않는 진화론 얘기는 잠시 접고,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관심을 갖는 스마트폰에 대해 얘기해보자. 아이폰이 국내에 시판되고 난 이후 국내 사용자들은 아이폰의 혁신성과 사용자에 대한 배려에 환호했고, 각계각층 및 삼성 내부에서조차 삼성 스마트폰의 위기설이 대두됐다. 소비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발전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고 세련된 제품이다. 또한 정말 중요한 것은 어플리케이션의 객수가 아니라 그 창조성과 혁신성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삼성과 애플은 근본적인 출발부터 다르다고밖에 얘기할 수 없고, 그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현재로선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룹 회장이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삼성에 닥칠 것이다.
이 상황을 우리 건축에 비교해 보자. 신기하리만큼 유사함에 놀랄 것이다.
대체적으로 한국 건축계의 대부분은 건축물을 건설과 시행의 잉여물이나 시설의 집합체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에서 몇 번째로 높은....', '아시아 최초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최신 설비를 갖춘....', '며칠 만에 분양 완료된....' (요새는 온라인 게시판에 초등학생도 일등 놀이 안한다). 건축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신조어나 고사성어를 등장시키며 간판 내걸기에는 거의 신의 경지다. '이 단어는 무엇 무엇을 의미하고 이것은 무엇을 형상화했다....' 라는 유치한 상징주의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놀랍다. 건축가들은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일단 최신 잡지들부터 옆에 쌓아놓고 요즘 유행하는 형태를 샘플링하기 시작한다. 내용이야 어떻든 형태가 튀어주면 된다. 나중에 실제 사는 사람들이야 어떻든 일단은 조감도에서 효과적이어야 한다. 한국의 현상설계에 간혹 참가하는 해외 건축가들은 한국의 놀라운 3D 그래픽 신공에 혀를 내두른다. 내용이야 어쨌든 표현력으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아야 하니까.....또 매번 사로잡히기도 하니까....
잘해오던 것을 계속 잘 하면 된다고 했다. 최신 설비를 투자하고,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세우고, 그럴 듯한 이름을 짓고, 전 세계 건축물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샘플링하기 좋게 분류해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좋은 컴퓨터 사서 3D 그래픽 기법을 개발하면 된다. 한국인들의 근면성이야 세계가 인정하니까 이 방면으로는 금방 세계 최고에 도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건축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야 한다. 외국 건축가들에게 고마워하며 더불어 3D 그래픽을 수주하거나, 공사를 수주해서 더불어 덕을 보면 된다. 사실 현재도 그러니까....
이번엔 컴퓨터 얘기를 해보자. 일반 사용자들은 거의 인식을 못했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가 Windows 95를 내놓던 시점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바로 OOP(Object-oriented Programming: 객체지향형 프로그래밍) 기법이 대두된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환경을 우선 조성하고 절차를 거쳐 프로그램을 수행하던 방식을, 각 객체를 중심으로 재편성하는 기법을 얘기한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캐드 프로그램을 열고 작성되어 있는 캐드 화일을 열던 것이, 이제는 캐드로 작성된 화일을 더블 클릭하면 연결되어 있는 캐드 프로그램이 작동되는 방식이다. 단순히 얘기하면 그저 사용자 편의성이 좋아졌다고 얘기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프로그래밍의 중심이 사용자에게로 넘어간 것이며, 대상과 절차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된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들고 그 사용법을 익히고 적응하느라 밤새워 가며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용자의 환경과 행태를 분석해서 그에 대한 환경을 구축해 놓은 아이폰을 들고 앱스토어를 산책하며 자신의 흥미를 돋우는 걸 골라 재미있게 사용하며 쏠쏠한 재미를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존 스마트폰과 아이폰이 만들어 내는 차이다.
요즘은 누구나 어려운 시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그 근본적인 위기를 지적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시기적 문제가 아니라 건축이라는 직업 자체의 위기라고 본다. 어느 건축가는 오히려 우리가 백 년 전에 태어났으면 할 일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건축의 거장들이 시대를 풍미하던 시기는 이미 가능하지 않다. 단순한 한두 가지 아이디어나 예쁘게 치장한 형태로 건축을 하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건축주가 알아서 찾아오기엔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고 각박해졌다. 어느 외국의 사회학자는 현대의 변화하는 양상을 나노 스피드(Nano-speed)에 비유했다. 십년이 걸려야 강산이 변하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났다. 그래도 건축가들은 '우리는 시대와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이란다. 옛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건축에 역사학자는 있을지언정 시대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건축가나 이론가는 없다. 한국 건축에 삼성은 있지만 애플은 없다. 앞서 얘기한 OOP나 아이폰 같은 혁신이 한국 건축에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남성이나 한국 건축이 갑자기 멸종하진 않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남은 인생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남성이 없어진 지구의 여성들처럼, 언젠가 우리 사회에 건축이라는 존재는 멸종돼 버리고 사회의 나머지 부분이 그 역할을 대체해 버릴 것이라는 예상이 어렵지 않다.
한국 건축의 스티브 잡스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아이폰도 기대한다. 건축이라는 직업 자체를 재정의하고 혁신적인 비젼을 제시하는 인물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1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자각해야 한다.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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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전 왜 계속 못 찾았을까요ㅜㅜ
아마도 사용자 중심의 변화가 머릿속에 깊게 자리잡혀서 멸종과 연관시키지 못해
무심코 넘겼나봅니다.
3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삼성은 우려와 달리 나름 선전하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건축은 그대로네요. 조금씩 바뀌어 가겠죠?^^ 저 또한 한국건축의 스티브 잡스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ㅋ
교수님! 건강하세요! 사이트 자주 들리겠습니다.
아무튼 너희들이 바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