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암쪽에서 바라본 의상대의 모습
이렇게 사진은 찍었지만, 의상대의 의미는 이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의상대에 올라 거리낄 것 없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바다, 파도, 바람...이런 무한대적인 인식 환경, 즉 '보는' 역할이 의상대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 서양건축과 대별된다. 대개의 서양건축은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는 'explosive'(외폭적인) 한 성격을 가지는 반면, 우리 고건축은 외부의 환경과 우주를 어떻게 집으로 끌어들이느냐 하는 것에 집중하는 'implosive'(내폭적인) 한 존재인 것이다.
의상대에서 본 홍련암의 모습
홍련암의 입지를 생각해 보면, 왜 하필 저곳에 지어야했는지가 궁금하다. 땅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단순히 바다를 보고자 했다면 의상대 주변도 있었을테고, 더구나 집을 짓기에 적당한 자리도 아니고 거의 곡예를 하면서 지었을텐데...그 의미는 의상대와의 관계와 같이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그 이상한 입지에 관한 설화가 있기는 하지만, 현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설화일 뿐이고,
의상대사의 땅을 읽는 안목, 즉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시각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우매한 중생들에게 그럴듯 하게 납득시키기 위해 포장한 것이리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겠다.
의상대와 함께 생각해 보면, 해답을 유추할 수 있겠는데,
물론 낙산사는 불교사찰이기는 하나, 유교적인 사상에서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음과 양의 조화' 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의상대는 '양'의 존재이고, 이것과 조화되는 '음'의 존재가 필요했을 터...
의상대와 홍련암은 그 기능조차 아주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지형도 의상대가 가장 높고 돌출된 지형에 자리잡고 있으니, 그에 상반되는 '음'의 대지는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야 한다면 지금의 위치가 가장 최적이 아닐까 짐작케 한다.
더우기 사찰의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요샛말로는 'key tenant' 와 같은 상징적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 역할이 '부처님의 진신사리' 라는 존재로 부여되며, 그것이 쉽사리 노출되지 않는 신비성을 갖춘 위치가 필요했는데,
그에 걸맞는 장소가 바닷가의 깊숙한 동굴이 눈에 띄었으리라....
따라서 그것을 더욱 신격화하기 위한 암자가 필요했다...이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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