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빠름
답사를 다녀온 며칠 후 였습니다.
답사를 가기 전 불필요한 카드와 기타 등등의 것을 넣어놓은 지갑을 찾고 있었습니다. 보통 때와는 다른 곳에 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군요. 마음만 조급해지고 뒤지고 또 뒤지고...그렇게 1시간 반이 흐르니 속이 까맣게 타더군요. 시간이 없어 포기하고 집을 나오는데 찜찜하더군요.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아흔이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약국을 물으시기에 손을 잡고 길을 같이 건너는데, 할머니 걸음이 어찌나 느리신지...그러나 길을 건넌 후 꽉 막혔던 제속은 언제 뚫렸는지 편하기만 하더군요. 그러고선 평소에 조급했던 제 마음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서 보는 콘크리트 벽이 제 좁은 마음같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롱다리처럼 시원하게 올라간 건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이런 롱다리와 빽빽함이 싫었습니다. 건축과를 오기전에도 고민을 한 부분이고 제가 공부를 하면서 풀어야 할 과제이겠지요.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소쇄원이었습니다. 소쇄원을 오른지 얼마 안 되어 화장실이 급했던 저는 다시 내려와 올라갔는데 여럿이서 첨 오를 때와는 다른 느낌이더군요. 걸음도 느려지고 제 시선도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쌉싸래한 향에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높이를 달리한 낮은 담과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문,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물길과 쪼갠 대나무에서 나오는 약간의 낙수...그리고 광풍각의 들어올려진 4면의 창호는 빛과 바람을 맞기엔 정토사의 창호보다 더 자연스럽고 적극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저는 정토사를 보면서 별로 좋은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실내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황토빛은 좋긴 했지만 각진 콘크리트와, 다른 절과는 달리 쉼없는 풍경소리는 방정맞게 들리더군요. 그날 그쪽에 바람이 좀 불어서였을수도 있으나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과는 다른 뭔가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각진 건물은 주위 자연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요. 대흥사에 갔을때 홍석이가 “누나, 건물이 이어지는 곡선과 산의 곡선이 비슷하게 떨어지지 않나요?”라고 말했는데, 그러고 보니 산을 등진 건물은 높고 골짜기방향의 건물은 낮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런 느낌과 정토사를 봤을때의 어색함과는 사뭇 다르더군요. 대흥사 뒤편에는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어 올라가봤는데 시멘트가 쓰이고 마구한 못질에다 아귀가 안맞아 쑤셔넣은 나무막대기...씁쓸함 그자체였습니다. 정토사 스님도 말씀하셨던 “빨리빨리“에 ”대충대충”까지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할머니의 걸음처럼 느리게 걷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답사에서 느낀 점은 이정도구요, 답사전에 미리 공부를 하지않았습니다. 첫 답사라 제가 느끼는 그대로를 보고 싶었거든요. 답사에서 제가 모르는 것 질문할때마다 잘 가르쳐준 동기들에게 정말 고맙구요.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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