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선남군의 글처럼 자상한 인솔과는 거리가 먼...그냥 답사하는 사람들의 한 일원으로서 따라갔었습니다.
1학기에 안동권을 저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저로부터 어떤 설명이나 지침을 듣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면 실망스럽기까지 했을 겁니다.
굳이 그 이유라면, 다른 글에도 썼지만 전통 '건물' 자체에는 별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그 선조들의 생각과 거기에 스며있는 철학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도 이제야 하나하나 발견해가는 과정이라 내가 이렇게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을 얘기하기가 정리도 안되었고, 제 생각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도 있습니다. 어차피 몇십분의 답사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기에, 건축사적인 '해설'보다는 각자 스스로가 계속 느껴가며 깨우쳐야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선은 즐거웠고 유익했던 것은 저도 말할 나위 없구요, 1학기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그런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느끼기만 해도, 그런 기회의 공여자로서 행복할 따름입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고건축 답사라는 것에 대한 제 생각을 얘기해보면, 우선은 많은 학생들이 카메라 보다는 스케치북을 들었다는 것을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합니다. 몇몇 대표에게 그런 얘기를 흘린 것은 기억하지만, 그렇게까지 실천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사진과 그림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진의 병폐(?)라고 지적한 점은, 대개의 경우 촬영을 마치고 나면 '저 장면은 이미 내 필름 속에 들어왔다...'고 안도를 하는지 돌아서 버리고 맙니다. 마음이 느낄 기회를 빼앗는 것이지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이후에라도 잘 보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뽑고 나서는 한번은 보겠지만 이후에 다시 꺼내보는 일은 거의 없어지고 어디다 어떻게 뒀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이번에 다산초당을 어렵게 갔을 때는 날이 거의 저물어서 아마 사진이 거의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후래쉬를 터뜨렸다고하지만 후래쉬가 온세상을 다 밝힐 수는 없는 겁니다. 또 공간도 좁아서 건물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스케치를 하면 촛점 맞출 걱정, 노출걱정, 역광걱정, 사람들 보고 비키라고 소리지를 걱정 다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스케치는 렌즈가 '보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이, 마음이 '느낀' 것을 담기때문입니다. 한밤중에도 스케치는 가능합니다. 그런면에서 백련사의 경우는 아까웠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그리거나 혹은 찍을 것이냐....
저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건물'을 보지 않습니다. 그 '건물'이 들어섬으로 인해 얻어지는 공간과, 선조들이 왜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읽어내려고 애써봅니다. 이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모습은 어땠을까도 생각해보고, 이 건물이 다른 곳에 있었다면? 하기도 해봅니다.
하나의 요령을 얘기하자면, 정자의 내부에 조그만 방이 하나씩 있게 마련입니다. 그 이유라면 당연히 기후로부터의 보호와 일종의 프라이버시 등이 이유이겠습니다만, 그 위치를 보면 그 정자가 어느 방향에 중점을 두었는지, 즉, 무엇을 보고 느끼려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식영정과 소쇄원의 경우에는 그 방이 뒷 쪽에 치우쳐 있어서 정면의 들판과 강과 계곡에 그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명옥헌의 경우는 방이 가운데에 있고 뒷편으로도 조그만 툇마루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앞의 연못 뿐만 아니라 뒷산의 풍광에도 의식을 늦추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산사가 그렇지만 무위사는 대웅보전에 이르는 길에서 많은 사념을 떨어버릴 수 있는 과정을 이뤄놓아, 경건할 수 밖에 없이 만듭니다. 대둔사의 일주문은 그 방향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합니다. 고건축은 들어가며 보는 것도 좋지만, 나오면서도 정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요. 그만큼 \'보기 위한\' 것 만큼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으리라 생각됩니다.
식영정의 경우를 보면, 앞의 너른 들판과 강을 바라다 보면서도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모습인데, 그곳에 도달하는 계단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급경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런 형상이 나왔으리라 생각되지만,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몇이 '이 계단 너무 불편해요..' 라는 불평을 했지만,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신체칫수 때문만으로 그리되지는 않을겁니다. 혹은 그냥 공사하는 막일꾼들이 대충해서 그랬겠습니까?
우리 옛분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을겁니다. 더구나 정자 건축이라면 당시 학문의 결정체라고까지 여겼을 것이고, 또 그 존엄하신 분이 매일 오르내렸을텐데....대충이란 없었을 겁니다.
소쇄원도 그렇게 느꼈겠지만 돌 하나 가져다 놓는 것에도 만물의 이치를 생각했을 겁니다.
건축계 내에서도 '전통의 계승' 문제로 논란이 많습니다. 이제는 경복궁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나 독립기념관과 같은 전통건축의 '겉모습 베끼기'는 촌스러운 것이란 것은 대부분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제 2세대 촌스러움이 등장하기 시작하더군요. '마당'이나 '열주' 등을 현대화하는 '공간 베끼기' 작업이 그렇습니다. 이 계열에는 동시대 우리나라의 최고를 자부하는 유명건축가도 끼어있으니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마당'과 '열주'가 없는 나라를 찿는 것이 더 힘듭니다. 이것은 선조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서 그렇습니다. '공간 베끼기' 작업이 그 방법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전국의 전통공간을 다 베끼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또 건축가가 필요 없겠지요. 요새 아주 편리해진 3d 등으로 전국의 그것을 데이터 베이스화 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지요.
이번 답사는 그런 면에서 애써서 멀리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 느낄 여유가 없었습니다만, 다만 좋은 소개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도 소쇄원은 이번이 세번째였는데, 갈때마다 새롭습니다.
한두번으로 읽어지는 대상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마다 찿아가고 느끼고 해야됩니다.
겉모습만의 가치를 찿는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됩니다. 화보집을 사서보면, 여러분보다 훨씬 좋은 카메라로, 훨씬 기술이 좋은 사람이, 훨씬 좋은 날씨에, 훨씬 좋은 각도에서 찍어 놓은 사진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린 꾸준히 가야됩니다. 느끼기 위해서....
p.s. 배경음악으로 eva cassidy 의 fields of gold 를 골라봤습니다. 본래 sting 의 원곡인데요 예전에 한번 올렸던 autumn leaves 를 부른 같은 가수입니다. 이번에 너무 좋은 곳을 가서 너무 좋은 것을 얻어왔다는 생각에, 제목이 그럴싸해서 올려봅니다. 청승맞긴하지만 늦가을, 혹은 초겨울의 분위기와 맞을런지요.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영화 'LEON'의 'shape of my heart'를 부른 sting의 곡인데..
노래를 들으면 벼가 익어가는 가을들녘이 느껴지는 정말 부드러운 곡입니다.
정말...전통건축을 섣 부르게 배우고 가면 반은 잘난체..반은 자기가 아는것만 찾게 되는거 같아요.. 그 속의 깊은 뜻을 모르게 되는 과오를 범하게 되거든요...역시 자신이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거 같아요..(이런.. 제 컴은 소리가 안들려요 ㅠ.ㅠ)
앗 노래가 1초만에 받아졌어요.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