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과 나뭇꾼 : 과연 초고속 시대인가?
어느 이름없는 산 속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이 실수로 그만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다.
◈ 엣 날 ◈
10:00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 나무꾼은 엉엉 울었다.
10:01 연못에서 산신령이 금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이 금도끼가 니 도끼냐?" "아닙니다."
10:02 산신령이 연못으로 들어갔다.
10:03 산신령이 은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이 은도끼가 니 도끼냐?" "아닙니다."
10:04 산신령이 다시 연못으로 들어갔다.
10:05 산신령이 이번엔 쇠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이 쇠도끼가 니 도끼냐?" "네! 그 쇠도끼가 제 도끼입니다." "어허! 착한 백성이로고! 내 너의 정직함이 기특하여 이 금도끼와 은도끼도 다 주겠노라!"
10:07나무꾼이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와 쇠도끼를 받았다.
※ 소요시간 : 7분
※ 비 용 : 7분동안 나무 못함.
※ 수 확 물 : 도끼 찾음 + 금도끼, 은도끼 공짜로 얻음.
◈ 20세기 말 ◈
10:00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 나무꾼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10:01 - 전국 산신령 협회에서 운영하는 700-5370(오!산신령)입니다. 본 정보에 관한 문의는 02)123-4567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본 정보는 삐소리가 난 후부터 30초당 90원과 부가세가 부과되오니 원치 않으면 끊어주십시오. ∼ 삐 ∼ 안녕하세요. 본 정보는 전국산신령협회에서 운영하는 정보로서 본 정보를 통해 산신령에 관한 각종 문의와 도움요청등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전국 산신령협회는...어쩌구 저쩌구...주절 주절...나불 나불...(중략) 귀하의 주민등록번호 13자리와 #을 눌러주십시오. 123456-7891011 # 귀하가 누르신 번호는 123456-7891011입니다. 맞으면 1번 틀리면 2번을 누르십시오. 1 # 귀하의 전화번호를 지역번호와 함께 눌러주십시오. 012)345-6789 # 귀하가 누르신 번호는 012)345-6789입니다. 맞으면 1번 틀리면 2번을 누르십시오. 1 #
10:10 - 다음을 들으시고 원하시는 서비스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산신령이 되고 싶으시면 1번 백일기도 문의는 2번 아들점지를 원하시면 3번 꿈 해몽은 4번 ...... 도끼를 연못에 빠뜨린 분은 10번을 누르시고 #을 눌러주십시오. 10 # 도끼를 잃어버리신 산을 선택해 주십시오. 한라산은 1번 지리산은 2번 설악산은 3번 속리산은 4번 오대산은 5번 소백산은 6번 월악산은 7번 ........ 기타산은 100번을 누르시고 #을 눌러주십시오. 100 #
10:30 - 귀하는 기타산을 선택하셨습니다. 상담 산신령을 연결해 드리겠사오니 자세한 산의 위치와 모양새, 연못의 위치등을 직접 상담 산신령에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 ♩♬♪♪♩♬ 죄송합니다. 상담전화가 폭주하여 상담 산신령을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 ♩♬♪♪♩♬ 죄송합니다. 상담전화가 폭주하여 상담 산신령을 연결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 ♩♬♪♪♩♬ . . .
10:50 - 네! 상담 산신령입니다. "네...제가 어디어디에 이렇게 저렇게 생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요기요기에 있는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습니다. 좀 꺼내주십시오." - 네! 가까이 있는 산신령을 곧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2:00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무꾼의 도끼를 들고 나왔다. 나무꾼은 도끼를 받았다.
※ 소요시간 : 2시간
※ 비 용 : 핸폰요금 + 정보이용료 약 10,000원 + 2시간동안 나무 못함.
※ 수 확 물 : 도끼 찾음
◈ 21세기 초 ◈
10:00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 나무꾼은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10:01 노트북을 켰다. 무선인터넷 접속을 하였다....접속 실패. 다시 접속을 시도하였다..... 접속 실패. 다시 접속을 시도하였다..... 접속 실패. . . . 가까스로 접속되었다
10:10 익스플로러를 열었다. www.mountgod.co.kr에 접속하였다. 접속이 되는 순간 컴이 서 버렸다. Ctrl + Alt + Del [프로그램 종료 대화상자를 표시하는 중입니다. 대화상자가 나타날때까지 기다리거나 시스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windows로 돌아가서 기다리려면 아무키나 누르십시오. . . ] 아무키 [시스템이 사용중이거나 불안정합니다. 사용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시스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windows로 돌아가서 기다리려면 아무키나 누르십시오. . . ] 아무키 [치명적인 오류가 xxxxxxxxx에 발생하였습니다. . . ] Ctrl + Alt + Del
10:15 컴을 재부팅하고 다시 접속을 시도하였다. 접속 성공. 익스플로러를 열고 www.mountgod.co.kr을 쳐 넣었다. enter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검색한 페이지는 현재 사용할 수 없습니다. 웹 사이트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거나 브러우저의 설정을 변경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을 시도하십시오. .... 이하 잡소리 ..... ] 새로고침 [이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 웹 사이트에 액세스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다음을 시도하십시오. .... 이하 개소리 ..... ] 새로고침 [이 페이지를.... 이하 헛소리 .... ] . . .
10:50 드뎌 연결 성공. '도끼찾기'메뉴를 클릭 [회원가입후 로그인 하시기 바랍니다.] 회원가입...클릭 [아래의 이용약관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용약관 ...... 국민교육헌장보다 훨씬 더 길다.] 약관 다 읽고 동의...클릭 다음의 아이디 및 이용자 정보를 등록하여 주십시오. 아이디 : 중복확인 : 비밀번호 : 비밀번호확인 : 성명 : .... 등 등 ..... ] 가입확인...클릭
11:20 [나무꾼(woodcut)님. 산신령나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도끼찾기...클릭 [본 메뉴는 유료회원 전용입니다. 유료회원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네...클릭 [...이러쿵 저러쿵... 3개월 45,000원 결제수단을 선택하십시오. 1. 휴대폰 2. 신용카드 . . . ] 확인...클릭 도끼찾기...클릭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신 분은 해당 산의 게시판에 자세한 사항과 연락처 를 남겨주십시오. 담당 산신령이 신속히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단, 도끼 우송비용은 이용자 부담입니다.} 게시판...클릭 '저는 언제 어디서 도끼를 앓어버린 우매한 나무꾼입니다. 유일한 제 생계의 수단이오니 제발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주소 : 연락처 : ]
12:00 전송 완료 이틀후 10:00 택배로 도끼 도착...
※ 소요시간 : 2박 3일
※ 비 용 : 유료가입비 45,000원 + 택배요금 25,000원 + 2박 3일간 일 안하고 술만 먹음.
※ 수 확 물 : 도끼 찾음
참 고 : 김서방네 대장간서 도끼 한자루 30,000원에 팜.
리얼하네요!
[RE]^^;;
재밌네요.
차원전환의 괴리
참 재미있는 글이어서 다시 읽다보니...시대의 변천이 도끼에만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캐드시스템이 처음 보급이 될 무렵, 그것의 최대 장점으로 도면 작성 및 수정의 편리함을 강조했었지요.
그때야 물론 지금의 컴퓨터 시스템과는 거리가 아주 먼....40여분이 걸려서 도면 하나를 띄우던 시절이었습니다만, 그렇게 도면이 컴퓨터에 떴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편리하더군요. 손으로 도면을 작성하려면 손과 옷에 시커멓게 연필가루를 묻혀가며 거의 제도판에 엎어지다시피 그려야 했고 그때문에 허리가 아프다는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수정은 또 어떻습니까? 지우개 똥(?)을 사방으로 흩으면서 팔에 힘도 많이 들고 뻑뻑 지우다 보면 도면 찢어먹기 일쑤고....그랬던 상황이 캐드라는 놈 때문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도 아주 우아하게 도면을 그리고 수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단 말입니다. 수백번을 고쳐도 도면 손상은 커녕 고친 흔적도 남지 않으니 그 또한 우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까맣게 속고 넘어간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 변환에 관한 일이지요.
컴퓨터 내부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실세계가 아니란 사실을 망각한 겁니다.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신기해하기만했지, 그것이 우리 눈 앞에 하나의 도면화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예를 들어, 한 도면을 작성했다 칩시다. 그 도면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윗분들께 검사받기 위해서 플로팅을 해야됩니다. 요새야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엔 이놈의 플로터도 도면 한장 출력하는데 애를 엄청 먹였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출력을 걸다보면 선두께를 잘못 지정해서, 기껏 뽑은 도면을 찢어버리고 다시 조정하는건 예사고, 거의 다 뽑을 즈음 잉크가 떨어지거나 막히거나하면 몇십분을 투자한 것이 헛수고가 돼버리고, 나오는 한숨에 윗 사람들 안볼 때 플로터 걷어차며 화풀이 하고....쌓이는 폐지에 관리하는 사람들 짜증내고, 종이 아껴라, 잉크 아껴라, 출력할 때 허락받고해라....
윗 사람된 입장도 갑갑하지요. 어느 정도 진행했는지 보자고하면, 지금 작업 중이라 컴퓨터 안에 다 있다고...컴퓨터 쓸 줄 모르니 갑갑하고, 그래서 출력하라 해놓으면 몇 시간씩 걸리고...연못가에서 그냥 울고 있으면 산신령이 알아서 튀어나올 때가 그리워지는 거지요.
결국 시간이나 금전적으로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단 말입니다. 옛날엔 그리자마자 연필가루만 툭툭 털면 그냥 도면이었는데, 컴퓨터는 매번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도면이 되니 말이지요.
결국 시스템의 변환이 필요해서 생기는 불합리입니다. 캐드... 물론 좋습니다. 컴퓨터도 눈부신 발전을 했구요. 하지만 차원의 전환이 필요한 이상은 같은 종류의 괴로움을 계속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습니다. 시스템변환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컴퓨터 세계면, 그 세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겁니다. 건축주에게도 이메일로 납품하고, 현장도 컴퓨터에서 도면을 확인해서 시공하고...이럴 수 있다면 캐드 시스템이 더할 나위없이 효율적인 도구가 되겠지요.
위의 상황만 해도 비교적 근래에 벌어진 일이지만, 건축에 존재하는 아주 고질적인 시스템 변환의 괴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차원의 변환에 따르는 괴리입니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3차원을 다루는 일입니다. (물론 여기에 시간의 걔념까지 더한다면 4차원이 되겠지만말이지요..)
그런데 자기가 창조해낸 3차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차원을 거슬러 2차원화 시켜버렸습니다. 이른바 차원의 역행이지요. 따라서 문제점도 많이 발생합니다. 서투른 사람 평면과 단면, 입면이 다르기 일쑤입니다. 예전에야 건축물이 다 반듯반듯했지만 요즘같이 다양한 형태와 공간을 추구하다보면 차원 역행이 거의 불가능하게도 느껴집니다.
교수님들이 가끔 그런 말씀하시지요? '이 평면에서 이런 단면이 나오는 것이 맞아?' 이것은 우리가 애써서 차원 역행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차원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모형을 만들지요. 하지만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모형은 2차원 도면 완성 후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작업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당연히 순서가 바뀌어야지요. 처음부터 3차원으로 생각하고(혹은 4차원으로...) 3차원으로 표현하고, 3차원으로 전달하면 아무 문제 없을텐데...이런 의미에서 평면, 입면, 단면들은 분리될 수 없는 개체들입니다. 도구일 뿐이니까요.
평면은 꽤 했는데 아직 입면을 생각 못했다....이런 얘기는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정말 효율적인 3차원 전달도구가 개발되기 전이라도 우리의 사고방식, 사고순서는 맞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고 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나무꾼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