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화선'은 조선말기의 혼란한 시기에 천민출신으로 성장하여 술과 여자, 그리고 붓과 함께 바람처럼 살다간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감독은 끊임없이 카메라를 이용해 한국의 산수화,풍경화는 물론이거니와 전통한옥주거 내부의 채와 채,마루,마당 등의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조선시대 전통건축이 담고 있는 빼어난 공간미학은 영화 장면 구석구석에 채워져 있다. 창이 열려있고 담장너머로 바라다보이는 인물은 켜에 의해 발생되는 원근감을 잘 보여준다. 또 담장을 배경삼아 개방된 마루공간에 앉아 피리를 부는 선비의 모습에서 선조들이 공간의 풍류까지도 확실하게 인지하여 즐기고 지냈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다. 영화속 장승업도 그림을 그리고 있으나 감독 또한 인물과 장소를 소재로 하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영화속의 인물들은 적절한 여백이 있는 장소에서 움직이다가 어느 시점에서 잠시 자연스럽게 머무르는 듯한 연기를 하는데 기교스러운 이동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카메라가 아닌 붓을 놀리는 듯한 감독의 치밀한 연출을 곳곳에서 읽을수 있다. 이러한 감독의 연출의도는 승업과 매향의 꽃밭신에서 절정에 달한다. 마치 한 폭의 춘화도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격정적인 인연의 감정선이 흐르는 한국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있다.
편집에 있어서는 예의 임권택 스타일을 고스란히 답습하여, 세부적인 내용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관객은 항상 빠르게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바쁘게 되지만 극단적인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한 화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있어 생략에 의한 빠른 전개는 사극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으며, 동시에 영화 전체를 그림이미지들로 묶어 하나의 화작(畵作)화 하는데 기여한다. 감독은 비교적 냉정한 시선으로 인물과의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고 건조하게 흘려버리면서도 한편의 끈적하고 격정적인 드라마를 차분히 일구어 낸다.
영화는 간간이 접사로 촬영된 꽃과 나무들, 장승업의 얼굴을 교차하여 클로즈업시키면서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예술혼을 말하고자 한다. 3차원의 아름다운 영상을 2차원의 하얀 평면에 옮기는 작업은 먹의 농담,선의 굵기,색채로서 표현되며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운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승업의 천재적인 예술성은 세인들에게 인정을 받으나 그는 대중의 인기나 명예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달라지기를 갈망하고 오직 예술을 위해서 끝없이 방황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행적인 그의 삶 속에서 건져내지는 신기(神技)는 과연 이 시대에 어떤 화두를 던질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영화는 정말 그림감상을 하러 왔다... 생각하고 보시면 되겠네요
예술적 이상과 돈벌기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환쟁이의 삶은 우리 건축쟁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장승업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오직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에 피가 끓습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야...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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