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영화를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평범한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자극, 즉 폭력,섹스,환상,가슴아픈 로맨스,따뜻한 감동과 같은 것이라면 '생활의 발견'은 그런 영화가 가지고 있는 흥행적인 요소를 대부분 배제함으로서 기존 영화와 근본적인 대립을 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영화는 핸드폰을 통해 대화하는 것, 또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남녀간의 만남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를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그렇기에 더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항상 무언가에 찌들어 있는 듯한 모습, 또는 조금은 홀린듯한 모습, 때로는 행동에 있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서로간의 어색함과 썰렁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무의미한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 그런 것들이 바로 일상인 것이다.
감독은 그러한 일상사를 액면 그대로 담으면서도 프레임안의 인물과 배경의 구도만큼은 비교적 정밀하게 지킨다. 옛날 한옥주거가 밀집되어 있는 마을동네담장과 골목길을 찍은 장면에서 우리네 서민의 삶의 장소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영상미를 볼수 있기도 하는데 감독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인도와 동네골목길, 시장골목길, 숲길 등의 여러가지 형태의 길에 상당한 집착을 보인다. 길을 걷는 인물들은 긴시간을 걸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된다. 그 인물들이 걸어가면서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때로는 군중속에 섞여서 언제 멀리 사라지는가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주인공이 이미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같은 장면을 롱테이크로 처리하는데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인물과 함께 그 배경과 장소를 인식할수 있게 한다. 제목처럼 '생활'을 발견하기 위해 생활을 담고 있는 배경이나 장소를 인물과 대등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런 영화에서 인물의 가치는 영화속의 오브제와 거의 비슷하게 취급된다. 그러한 물질적인 취급에 더하여 유치한 듯한 녹색표지의 제목달기를 통해 이 영화가 이미지로서가 아닌 삼류단편소설과 같은 하나의 text로 읽혀져서, 궁극적으로 작가의 말하는 바가 전달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여관 또는 호텔이라는 섹스의 공간도 마찬가지로 로맨스의 자극적인 환상 같은 부분은 없으며 아무 느낌도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평범하게 묘사되어, 영화속 섹스가 하나의 탈출구나 궁극적 의미가 아닌 식사를 하고 길을 걷는 것과 같은 무의미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영화후반부에 들어서 여관이라는 섹스의 공간과 선영의 한옥 주거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서로 연결시키는 골목길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주변의 군더더기를 생략해내고 일상생활에서의 인물을 그 배경 공간과 함께 명료하게 담아내는 건축적인 구성을 볼수 있다. 세 공간의 관계설정을 통해 감독이 생각해왔던 '생활' 이라는 단어에 나름대로의 작가주의적 해석과 정리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속의 인물은 서로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 주인공과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얼굴에는 웃음을 띄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 차가움이 일상의 배경에 깊숙히 깔려있다.
남녀주인공들은 서로에게 끌리고 섹스라는 가장 원초적인 접촉을 나누면서도 서로의 어색함을 느끼고 그러한 분위기를 대화로 메우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영화는 도시라는 변질된 사회가 뿌려놓은 무의미하고 허무한 분위기가 일상의 삶을 이미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상경은 여성이 끌리는 성적매력이 있는 동시에 서투른 연애작업(?)능력을 가진 남자를 연기한다.
그 무능력함과 불운함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허무하게도 홀로 남겨지는 결말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듯 감독은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쓸쓸한 로맨스스토리를 통해 도시와 마을이라는 울타리에 담긴 현대인의 고독함과 일상의 남루함을 차분히 표현해내고 있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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