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예지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갈갈이 끊겨지고 구겨진 필름처럼 불확실하다. 경찰은 이렇게 조각난 정보에서 단서를 찾아내려고 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1차적인 단서가 되는 것은 살인이 일어날 장소의 건축양식과 내부공간의 모습이다. 경찰은 '조지아 양식의 벽돌쌓기 공법으로 만들어진 조적조의 건물'이라던가 '닭장같은 연립주택'과 같은 구체적인 건축적 단서를 토대로 정확한 장소를 추리해 내려고 한다. 수사를 위해서 이미 경찰은 건축에 관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다. 부정확한 영상정보에서 정확한 사실을 얻어내기 위해서 미래경찰은 도시경관과 건축양식에 대한 풍부한 시각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다루어진 이러한 건축에 대한 언급은 물론 매우 1차적이고 표면적이지만, 적어도 건축의 외관이나 내부공간이 영화의 전개에 있어 키워드와 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소재의 확장이라는 측면에 있어 주목된다.
sf영화인 Minority report는 또다시 새롭게 디자인된 미래도시를 보여준다. 중력을 무시한듯한 어지러울 정도의 고속도로망과 투명한 디스플레이장치의 과다한 사용은 신선함을 넘어서서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도로화된 초고층빌딩의 표면위를 빠르게 오르내리는 차량의 이동은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미래파futurism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써 표현하려고 함)의 기본적 의의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건축은 정지하지 않으며 끝없이 역동하고 속도를 가지는 동적인 요소로서 미래도시를 이룬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미래상이나 도시생활은 항상 보아오듯이 상투적이다. 은회색, 백색의 건축내외부 벽면과 글라스월은 기존의 sf영화와 그다지 특별하지 못하여 영속적인 신선함을 주지는 못한다. 예지자의 신비로운 원뿔형 공간과 위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장대한 감옥공간은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공간적 볼거리이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는 부재하다. 자주 등장하는, 유선형으로 회전하게 되어있는 통로 역시 화면을 이쁘게 치장하는데 기여할 뿐이다.
고속도로망 표면을 장난감과 같은 자기부상 차량이 끝없이 질주하는 장면은 영화속 공간이 미래임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많은 액션신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주택가 뒷골목이나 빈민가 주거내부들은 지극히 2000년의 현실에서도 흔히 접할수 있는 낙후되고 더러운, 서민층의 평범한 모습들이다. 디스토피아 영화의 기본 설정이 그렇듯이, 미래 도시가 기형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 부분이다. 첨단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더욱 안락하고 편리하게 만든다는 유토피아적인 목표 아래에서 인간 개개인을 더 확실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시민의 망막을 인식하는 지하철역 시스템과 범죄자 수색로봇인 스파이더의 등장을 보면 인간이 2000년의 지금보다는 휠씬 더 자유롭지 못하게 보인다. 인간 개개인을 더욱 확실히 통제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어온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초고층빌딩과 최첨단 밀집주거의 양산, 지하철의 인식시스템, 고속도로의 원격 조종시스템 등의 공공시설의 첨단화를 가속화시켰으나, 역시 미래사회에서도 빈민계층, 소외된 계층들은 도시의 계속된 발전안에서도 외면당해왔고 도시계획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빈민주거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Minority report는 관객의 선험적 지식안의 현재를 보여주고 그 바탕에서 미래의 영상을 설득시킨다.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빈민주거의 평면을 위로부터 훑어가는데 지극히 밀도가 높고 불결한 주거평면의 모습은 가늘고 긴 다리와 타원형의 머리모양을 지닌 깨끗한 은회색 첨단이미지의 스파이더들에 의해 철저히 수색당한다. 빈민주거 단면의 모습을 통해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철저한 현실을 보며, 스파이더의 모습을 통해 상상치 못했던 가공할 미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또 초반부의 경찰이 등장하는 모습에서는 그들이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현재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전원주택이나 뒷골목 등의 지극히 평범한 장소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극명한 대비에서 오는 생경함이 관객을 압도한다.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우주선과 흡사한 외형의 비행선과 달표면을 떠도는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경찰개인 유영장비는 외계적이고 미래적이며, 그럼에도 그것들은 미래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인식하는 평범한 현실에서 활동한다. 이러한 대비의 묘는 미래 테크놀로지가 집약된 사이보그의 현재시간으로의 낯선 출현을 다루고 있는 terminator나 철저하게 미래적 배경과 요소로만 짜여진 Demolition man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영화는 지극히 미려하고 아름다우며 스필버그의 영상연출은 완벽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Twelve monkeys만큼 충격적이지 않으며, 전개의 양상도 Total recall만큼 가학적이고 어지럽지 않다. 후반부로 치달음에 따라 예지자들이 작동하지 않거나 또는 예언이 빗나가고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면서 예언이라는 극단적인 복선을 통해 숨이 막힐듯 하던 영화의 뿌리자체가 말단에 와서 무의미해진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스필버그는 다시한번 sf의 걸작을 탄생시켰으나, 크게 비뚤어지지 못하는 그의 영화는 어찌보면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스필버그 영상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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