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듯 하다. 영화 <인디펜던스데이>의 거대한 UFO가 그러하듯, 패닉룸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 공간적 매력은 이미 연기파 배우 조디포스터나 포레스트 휘태커를 앞서고 있다. 대가족이 살만한 큰 저택은 다양한 이벤트를 발생시킬수 있는 많은 공간 또는 장소를 제공한다. 영화 <패닉룸>역시 대저택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패닉룸은 주택에 강도가 침입하는 경우나 천재지변 등의 비상시에 이용하는 임시 거주공간이다. 패닉룸의 공간은 대저택의 가족성원 모두가 이용하기에는 다소 비좁은 면적이지만, 영화상에서는 단지 두세명 정도의 인물만이 출입을 하게 된다. 인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공간 내부는 자연스럽게 1인의 최소한의 활동이 가능한 점유면적을 확보한다. 인물들은 최소로 계획된 폐쇄공간에서 최대한 절제된 행동을 할수 밖에 없으며, 그런 특수한 상황은 패닉룸의 내부활동과 외부활동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패닉룸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저택의 내부가 패닉룸의 외부가 되어 이들 서로간의 스케일의 차가 워낙 크고, 내외부를 출입하는 순간 개인의 활동범위도 순식간에 달라진다. 이렇게 변화하는 스케일감으로부터 '구석공간' 또는 '주머니공간'이 갖고 있는 절묘한 매력이 있다. 주택평면 한 구석에 끼워져 외부와는 완전하게 차단된 공간인 패닉룸은 오히려 자신에게는 외부가 되는 주택내부를 감시할수 있는 cctv의 첨단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지만, 패닉룸안에서는 tv라는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서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심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지배할수도 있게 된다. 안에서 문을 열지 않으면 진입이 불가능하도록 강철로 둘러쳐진 벽과 실로 가공할만한 벽체의 두께는 패닉룸 공간의 절대성 또는 순수성등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패닉룸 내부의 마감되지 않은 콘크리트 회벽은 차가우면서도 신선하다. 마감되지 않은 원시적인 노출콘크리트 공간과 생체를 인식하는 자동문, 첨단설비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도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폐쇄공간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약하다. 패닉룸 자체가 워낙 난공불락의 안전한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자 소품으로서 자주 이용되는 바람에 육중한 문이 많이 여닫히게 되었고 그만큼 '갇혀있다'라는 의미가 희미해져 버렸다. 물론 내부인물이 바뀌고 자동문이 여닫히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며 건축요소에 의한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일반적으로 주택의 평면은 실의 배치와 동선의 거리가 보편적인 일상을 기준으로 계획되어져 있으나 생존의 위협이라는 영화적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기존의 계획된 평면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주택은 거실,침실,식당,홀 등의 실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전부 적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숨기는 하나의 은신처로서 변모되고, 인간이 걷고 있을 때를 고려하여 계획된 동선도 때로는 매우 빠르게 달려가야만 하는 동선이 되어버린다. 실과 실간의 관계, 예를 들면 '홀에 접한 식당' 등의 건축계획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벽으로 둘러싸여진 공간이라는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주택 내부에서 인물들은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몸싸움이나 추적 등의 가장 단순하고 일차적인 액션만을 반복한다. 이런 상황만이 벌어지는 주택에서 실들이 왜 그렇게 배치되어 있느냐 하고 묻는 것은 영화에서는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영화에서는 단지 연속된 공간들이 보기에 흥미롭거나 다양한 액션을 연출할수 있는 방향으로 보이게 되면, 그것이 곧 좋은 공간이고, 좋은 장면이 되는 것이다. (영화속 건축과 실제의 건축은 이렇듯 항상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듯하면서도 근본적인 목표나 의미에서 배치되는 면을 보이는데, 건축이 구축하고 그것을 영속시키는데 그 목표를 둔다면 폭력적인 상업영화는 일반적으로 건축을 파괴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에 목표를 둔다)
그런데 영화 <패닉룸>은 영화 <나홀로집에>의 초반부처럼 대가족이 이용하는 거주공간으로서의 주택 내부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상류층 저택은 두 모녀만이 살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방대하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며, 주택내부는 처음부터 음산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주택은 처음부터 주택같아 보이지 않고 영화를 위해 마련된 세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러한 느낌을 받는 것에는 다분히 미국적인, 또는 이국적인 저택의 모습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등장인물의 입장과 상황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는 의외성과 반전 등의 요소로 관객과의 게임을 유도하는, 스릴러 영화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우나, 아쉽게도 영화 전반에 데이빗 핀처 감독 고유의 색깔이 약하여 단지 미끈하게 다듬어진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되어버렸다.
패닉룸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된 불안한 미래를 절대적 공간으로부터 완전하게 보장받으려는 인간본능의 결과물로서,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반영한다. 비단 패닉룸의 설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춘 인간의 심리적인 면을 충족시키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주거의 형식이 전면으로 등장할 날도 머지 않은것 같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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